고신 커뮤니티

저서/논문/기고

기고|저서|논문

고신 커뮤니티연구성과저서/논문/기고

기고 [기고글] 골로새서의 “천사 숭배” - 길성남 교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478회 작성일 08-04-23 16:39

본문


골로새서의 “천사 숭배”

선지동산 45호 게재 / 성경본문 바로읽기(12) / 길성남 교수




골로새서의 난해한 본문인 2장 18절에는 “천사 숭배함”이라는 특별한 표현이 있습니다. 이 표현이 나오는 본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이 본문의 “천사 숭배함”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속격 구문 “뜨레스케이아 톤 앙겔론”을 번역한 것인데, 문자적 번역은 아닙니다. 헬라어 명사 “뜨레스케이아”는 “예배,” 또는 “경건”을 뜻하며, 속격 “톤 앙겔론”은 “천사들의”입니다. 따라서 이 구문의 문자적 번역은 “천사들의 예배”입니다. 대부분의 영어성경에서도 이런 식으로 번역합니다(NASB, NIV, NRSV, ESV: ‘[the] worship of angels’).
그러면 “천사들의 예배”가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 “사람들이 천사들에게 드리는 예배(숭배)”로 해석하는 것입니다(이것은 속격 “천사들의”를 목적어적으로 취한 해석입니다). 둘째, “천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해석하는 것입니다(이것은 속격 “천사들의”를 주어적으로 취한 해석입니다). “천사 숭배함”이라는 우리말 번역은 전자의 해석을 따른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골로새서의 주석가들은 “천사들의 예배”라는 구문을 사람들이 천사를 숭배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이 천사들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적 요소와 헬라의 이교적 요소를 받아들인 혼합적 형태의 이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중보자, 또는 매개자로 보았고, 천사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천사들을 의지하고 숭배하는 것을 겸손한 행위로 가장했습니다(2:18, “일부러 겸손함”). 거짓교사들의 “공교한 말”(2:4)에 미혹되어 골로새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천사들을 숭배하려 했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질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한 사도 바울은 급히 골로새서를 써서 거짓교사들의 주장을 논박하고,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해석에는 심각한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골로새서를 기록할 당시나 그 이전에 유대인들과 유대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천사를 숭배했음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해석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제시하는 증거는 후대의 것입니다. 주후 363년에 소집된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천사들에게 기도하는 행위를 금한 것이 중요한 증거입니다. 이 결정은 라오디게아 회의를 소집할 당시에 천사들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전제합니다. 주후 5세기 경에 테오도렛(Theodoret)이 골로새에 천사 숭배를 가르치는 이단이 유행했음을 지적한 것도 중요한 증거로 간주됩니다. 후대에 천사들에게 기도를 하거나 천사들을 숭배하는 일이 있었으므로 그 이전 시대, 심지어 바울 당시에도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후대의 증거가 반드시 그 이전 시대의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위의 증거는 지나치게 후대의 것입니다. 거의 400년, 또는 500년 가까이 지난 후대의 자료를 동원하여 바울 당대의 사실을 입증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런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골로새서의 강한 유대적인 요소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본 서신 2장 16절은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이 유대교의 음식법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 법을 매우 엄격하게 준수했음을 알려줍니다. 그들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동일한 율법 조항들을 강요하고, 그 조항들을 준수하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강한 유대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성경과 유대교가 금하는) 천사 숭배를 시행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실제로 바울 당대나 그 이전 시대에 유대인들과 유대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천사들을 숭배하거나 천사들에게 기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전무합니다. 그뿐 아니라 “천사들의 예배”라는 구문을 “천사 숭배함”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2장 18절의 또 다른 난해 어구인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해석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골로새의 거짓교사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논박이 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 이외의 다른 존재를 숭배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죄입니다. 따라서 거짓교사들이 실제로 천사들을 숭배했다면 사도 바울은 그 행위를 매우 강력하게 배격했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사도는 소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선언하기까지 했습니다(갈 1:8-9).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갈라디아 교인들을 하나님을 속히 떠난(갈 1:6)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책망했습니다(갈 3:1, 참조. 5:4). 그런데 골로새서에서 사도의 어조는 상대적으로 온건합니다. 물론 거짓교사들의 문제를 분명히 지적합니다. 골로새의 거짓교사들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성도들을 노략하려 했고, 그리스도와는 무관한 가르침을 전했습니다(2:8, 참조. 2:4). 게다가 그들은 머리(그리스도)를 붙들지 않았습니다(2:19).
그러나 천사들을 숭배한 거짓교사들의 행위는 강하게 배격하지 않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갈라디아의 거짓교사들에게 저주를 선언한 사도가 천사들을 숭배하고 그것을 다른 성도들에게 강요한 골로새의 이단을 강력하게 논박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상합니다.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에 미혹되어 천사들을 숭배하는 일종의 우상숭배의 죄를 범할 위험에 처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강하게 책망하지 않은 것도 이상합니다. 사도 바울은 단지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하고 책망할 뿐입니다(골 2:20-21).
이것은 무엇을 알려줍니까? “천사들의 예배”라는 구문을 “천사들에게 드려진 숭배”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이 천사들을 숭배하지 않았기에 사도 바울이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고, 책망하지도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들의 예배”라는 구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속격 “천사들의”를 주어적으로 취하여 “천사들이 (하나님께) 드린 예배”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증거는 바울 당시와 그 이전 시대의 문헌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6장에는 스랍들(‘스랍’은 불타는 자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영적 존재들을 가리킴)이 만군의 여호와를 찬양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2-3절, 참조. 단 7:9-10). 누가복음 2장에는 허다한 천군과 함께 천사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14절). 또 요한계시록 5장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어린 양을 찬양합니다(11-12절).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한 사실은 유대묵시문헌과 사해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Ian K. Smith, Heavenly Perspective[2006], 126-27).
이 해석에 따르면,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은 신비한 체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천사들이 천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장엄한 광경을 보고, 그 예배에 참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런 체험을 신앙의 가장 높은 차원에 속한 것으로 믿었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중요한 증거로 간주했습니다.  
그들이 환상을 보거나 신비한 체험을 하는 방편으로 중시한 것은, 엄격한 율법 준수와 “일부러 겸손함”(2:18)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일부러 겸손함”이라고 번역한 것은 본래 “겸손”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입니다(‘타페이노프로쉬네’). “겸손”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덕목입니다(골 3:12). 골로새서 2장 18절에서는 거짓교사들의 행위와 관련이 있으므로 부정적인 개념을 지닌 것으로 해석하여 “일부러 겸손함”(NIV: false humility)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동사형(‘타페이노오’)은 칠십인역(LXX, 구약성경의 헬라어역)에서 종종 “고행하다,” “금식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참조. James D. G. Dunn, Colossians, 179). 또 이 단어 자체는 몇몇 문헌에서 “금식”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전형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금식과 자기 몸을 괴롭게 하는 행위로 자기를 낮추고, 그렇게 하여 천상에 올라서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엄한 광경을 보고자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적 신비주의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은 이런 종류의 유대적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일부 조항들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금식을 하고 자기 몸을 괴롭게 하는 방식으로 환상을 비롯한 신비 체험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성숙하는 길을 걷기보다 환상과 체험을 통해서 최고의 경건과 영적 지식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체험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리스도보다 체험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를 그리스도 중심적인 종교가 아니라 체험 중심적인 종교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런 해석은 골로새서 2장 18절의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라는 구절과 잘 어울립니다. “그(가) 본 것들”(원어에는 복수)이란 신비한 체험을 하는 동안에 거짓교사들이 본 환상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하늘에 속한 신비한 것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본 환상을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짓교사들은 자신들이 본 것들을 자세히 이야기 하면서(BDAG §3, ‘go into detail’) 과시했고, 그것들로 인해서 교만해졌습니다(2:19). 또한 그들은 골로새 교회에 침투하여 자신들의 체험을 과장하면서 같은 체험을 하도록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부추겼을 것입니다.    
이처럼 “천사들의 예배”라는 구문을 “천사 숭배”가 아니라 “천사들이 하나님께 드린 예배”로 해석하면, 체험보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치아가 금으로 변하는 현상에 열광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보다 체험이나 신비한 은사적 현상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길 위험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물론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자 체험의 종교입니다. 체험이 없는 신앙은 영적으로 건조하고 온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체험을 추구하거나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다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비 체험을 추구하기보다 위엣 것, 곧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골 3:1-4). (다음호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73건 10 페이지
기고|저서|논문 목록
[기고글] 성화의 즉각성 - 박영돈 교수
성화의 즉각성 선지동산 45호 게재 / 성화의 복음(5) / 박영돈 교수 오늘날 강단에서 전파되는 성화에 관한 많은 설교들은 온통 신자의 책임과 사명, 그리고 열심을 고취시키는 윤리적인 지침과 권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예수와 그의 십자…
2008-04-23
[기고글] 깊은 영성은 어두운 밤을 지나면서 형성된다 - 김순성 교수
깊은 영성은 어두운 밤을 지나면서 형성된다 - 목회자들이여, 내면의 중심으로 들어가라 - 선지동산 45호 게재 / 목회리더쉽과 영성(11) / 김순성 교수 열심있는 기도생활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영적 메마름과 공허함을 느낀 적이 없…
2008-04-23
[기고글] 골로새서의 “천사 숭배” - 길성남 교수
골로새서의 “천사 숭배” 선지동산 45호 게재 / 성경본문 바로읽기(12) / 길성남 교수 골로새서의 난해한 본문인 2장 18절에는 “천사 숭배함”이라는 특별한 표현이 있습니다. 이 표현이 나오는 본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08-04-23
[기고글] 칭의는 복음, 성화는 율법? - 박영돈 교수
칭의는 복음, 성화는 율법? 선지동산 44호 게재 / 성화의 복음(4) / 박영돈 교수 ‘구원받기는 쉽지만 거룩하게 살기는 참 어렵다.’ 이것이 아마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이 신앙생활하면서 맛보는 당혹스러움일 것이다. 칭의라는 희소식에 …
2008-04-23
[기고글] 깊은 영성은 깊은 기도를 통해 샘솟는다 - 김순성 교수
깊은 영성은 깊은 기도를 통해 샘솟는다 - 목회자들이여, 깊은 기도를 경험하라 - 선지동산 44호 게재 / 목회리더쉽과 영성(10) / 김순성 교수 최근 기도 중 당신이 하나님 임재의 감격과 기쁨을 경험한 적이 언제인가? 하루…
2008-04-23
[기고글] 새로운 율법주의 - 박영돈
새로운 율법주의 선지동산 43호 게재 / 성화의 복음(3) 박영돈 교수 믿음에서 율법으로의 회귀   개신교의 생명력을 시들게 하는 것은 값싼 은혜가 빚어낸 무율법적 혼란만이 아니다. 최근 기독교 상담과 내적 치유를…
2008-04-23
[기고글] 영성이란 하나님을 맛보고 느끼는 것이다 - 김순성 교수
영성이란 하나님을 맛보고 느끼는 것이다 - 목회자들이여, 영적 미각을 회복하라 - 선지동산 43호 게재 / 목회리더쉽과 영성(9) / 김순성 교수 당신은 최근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는 중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본 적이 있는…
2008-04-23
[기고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 길성남 교수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계 2:10) 선지동산 43호 게재 / 성경본문 바로읽기(11) / 길성남 교수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아마도 이 본문은 요한계시록에서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많이 알…
2008-04-23
[기고글] 값싼 은혜의 복음 - 박영돈 교수
값싼 은혜의 복음 선지동산 42호 게재 / 성화의 복음(2) / 박영돈 교수 성화와 단절된 칭의 은혜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가르침이 한국교회에 도덕적 해이를 불러 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교회의…
2008-04-23
[기고글] 목회자는 자기영혼의 부를 축적해야 한다 - 김순성 교수
목회자는 자기영혼의 부를 축적해야 한다 - 목회자들이여, 텅 빈 영혼을 말씀으로 채우라 - 선지동산 42호 게재 / 목회리더쉽과 영성(8) / 김순성 교수 최근 읽은 책이나 글 중에서 당신의 영혼을 움직인 것이 있었는가? 설교를…
2008-04-23
[기고글] 하나님께서 주신 “만족”? - 길성남 교수
하나님께서 주신 “만족”? -고린도후서 3장 5절의 번역과 해석- 선지동산 42호 게재 / 성경본문 바로읽기(10) / 길성남 교수 신약성경은 1세기경에 코이네 헬라어(Koine Greek, 기원전 330년부터 기원후 330년 사…
2008-04-23
[기고글] “바르게 살라고 설교하지 말라” - 박영돈 교수
“바르게 살라고 설교하지 말라” 선지동산 41호 게재 / 성화의 복음(1) / 박영돈 교수 일전에 신학대학원에서 특강강사로 초청 받은 어떤 목사가 강의 중에 신학생들에게 “교인들에게 바르게 살라고 설교하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은 듣는 …
2008-04-23
[기고글] '사울'에서 '바울'로? - 길성남 교수
\'사울\'에서 \'바울\'로? 선지동산 41호 게재 / 성경본문 바로읽기(9) / 길성남 교수 사도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극적인 회심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혹자는 바울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탓에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다가…
2008-04-23
[기고글] 갈등은 리더십을 단련하는 불이다 - 김순성 교수
갈등은 리더십을 단련하는 불이다 - 목회자들이여, 갈등에 올바로 대처하라 - 선지동산 40호 게재 / 목회리더쉽과 영성(7) / 김순성 교수 당신이 최근에 겪고 있는 갈등은 무엇인가? 그 갈등을 당신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
2008-04-23
[기고글]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 길성남 교수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선지동산 40호 게재 / 성경본문 바로읽기(8) / 길성남 교수 누가복음 5:1-11은 시몬(베드로)의 감동적인 순종으로 인해서 한국교회 설교자들과 성도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온 본문입니다. 시몬은 어떤 …
2008-04-23
[기고글] 당신의 리더십을 진단하고 계발해야 한다 - 김순성 교수
당신의 리더십을 진단하고 계발해야 한다 - 목회자들이여, 건강한 리더십을 회복하라 - 선지동산 39호 게재 / 목회리더쉽과 영성(6) / 김순성 교수 당신의 교회는 현상유지에 급급하고 있는가? 아니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가?…
2008-04-23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