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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고글]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 길성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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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047회 작성일 08-04-2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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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선지동산 40호 게재 / 성경본문 바로읽기(8) / 길성남 교수




누가복음 5:1-11은 시몬(베드로)의 감동적인 순종으로 인해서 한국교회 설교자들과 성도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온 본문입니다. 시몬은 어떤 상황에서 예수님께 순종했습니까? 그는 게네사렛(갈릴리) 호수에서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잡았습니다(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들은 주로 밤에 물고기를 잡습니다. 밤에 물고기를 더 쉽게 잡을 수 있고, 또 밤에 잡은 물고기를 이른 아침에 내다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날 밤에는 그물을 들어올릴 때마다 그물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시몬은 고된 그물질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이윽고 훤히 동이 터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시몬은 집으로 돌아가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그래서 배를 호숫가에 대고 재빨리 손을 놀려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예수께서 다가오시더니 그의 배에 오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셨습니다. 시몬은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배에 자리를 잡고 앉으신 예수님은 호숫가에 모인 무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지칠 대로 지쳤고 배가 고픈데다가 졸음까지 밀려왔지만 시몬은 애써 참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쩌면 피곤하고 시장한 나머지 예수님의 말씀이 속히 끝나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이윽고 말씀을 마치신 예수께서 시몬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4절).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시몬은 예수님의 명령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졸다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하면서 자기 귀를 의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낮 시간에는 깊은 곳이 아니라 얕은 곳에서 고기를 잡는 것이 갈릴리 어부들의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보았자 아무 소득이 없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게다가 깨끗하게 씻어서 손질한 그물을 다시 내리는 것은 몹시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시몬은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매우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절). 밤새도록 수고를 했음에도 물고기를 잡지 못했고, 또 지금 그물을 내려도 물고기를 잡을 수 없을지라도, 선생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그물을 내리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시몬이 이런 놀라운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님에 대한 남다른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시몬은 자신의 장모의 열병을 예수께서 치유하신 기적을 직접 목격했습니다(눅 4:38-39). 그래서 예수님이 상식이나 경험에 맞지 않는 명령을 내리신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필시 무엇인가 특별한 뜻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을 때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심히 많은 물고기가 잡혀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된 것입니다. 시몬은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을 불렀고 잡은 물고기를 두 배에 나누어 실었습니다. 그런데도 잡은 물고기가 얼마나 많았던지 두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습니다(7절).

        이처럼 누가복음 5:1-11은 시몬이 자신의 경험과 상식에 맞지 않는 예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했을 때 큰 기적이 일어났음을 보여줍니다. 시몬의 감동적인 순종과 그 순종으로 인해서 일어난 기적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레 순종의 중요성에 주목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본문에서 너무 쉽게 시몬처럼 순종해야 한다는 교훈을 끌어냅니다. 우리의 상식이나 경험에 맞지 않는 경우에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도 시몬처럼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몬의 순종이 아무리 감동적이라고 할지라도, 저자인 누가가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이 과연 시몬의 순종인지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중심 사상이 무엇인지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감성적으로 읽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몬의 순종처럼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나 감동을 주는 것을 본문의 중심 사상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경향을 피하려면, 본문에 나타난 사건의 일부분이나 어떤 인물의 행동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본문을 전체로 읽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특히, 이야기체 본문(내러티브)의 경우에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본문을 전체로 읽어야 합니다. 사건의 도입과 전개와 결말을 모두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복음서의 거의 모든 이야기체 본문이 그러하듯이, 누가복음 5:1-11에서도 예수님이 사건의 주도권을 쥐고 계십니다. 또 본문의 전체 내용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도입부를 보면, 예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는 어부들을 발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시몬의 배에 오르시고, 그 배에 앉으셔서 무리들을 가르치십니다. 말씀을 마치신 뒤에는 시몬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고 그 기적으로 인해서 시몬이 두려워 떠는 대목, 즉 본문의 절정 부분에서 예수님은 시몬을 부르십니다. 이 본문의 결말은, 시몬과 그의 동료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예수를 좇았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등장과 가르침 → 예수님의 명령 → 시몬의 순종 → 기적 → 시몬의 반응과 고백 →  예수님의 부르심 → 시몬과 그의 동료들의 응답

이 사건의 흐름에서 우리는 시몬의 순종과 기적이 전체 기사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은 시몬의 순종이나 기적 자체를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시몬의 순종과 기적은 특정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보조 수단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특정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본문의 결말 부분에서 볼 수 있는 대로, 예수께서 시몬(그리고 그의 동료들)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먼저 시몬에게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 주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명령은, 시몬으로 하여금 큰 기적을 체험하게 하여 예수님의 정체를 알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그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르려는 의도를 가진 것입니다(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을 회복시켜서 다시 사명을 맡기려는 의도에서 이와 유사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요 21:3-7을 보십시오).  

        많은 물고기가 잡히는 이적이 일어났을 때 시몬은 전혀 기뻐하지 않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고도 허탕을 친 어부에게 단번에 두 배를 가득 채울 만큼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은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시몬은 그런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기뻐하기는커녕, 도리어 두려워 떨면서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기적이 지닌 의미를 정확하게 통찰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자연 만물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진 분으로 바르게 인식했습니다. 그런 권세는 오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만 속한 것인데, 예수님이 그런 권세를 갖고 있다는 것은, 그가 곧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분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시몬은 예수님을 지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대행자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체험하기 전에 예수님을 “선생이여”라고 불렀으나(5절), 기적을 체험한 뒤에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라고 고백합니다(8절). 그리고 절대적인 권세를 가지신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두려워 떱니다(하지만 아직 예수님에 대한 시몬의 인식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의 인식은 마침내 “[당신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공식적으로 고백하는 상태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누가복음 9:20을 보십시오).  

        이처럼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신 뒤에 예수님은 자신의 목적대로 시몬을 부르십니다.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10절). 이 말씀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을 취하는 자가 되게 하리라”라는 부름이자 약속입니다(참조. 마 4:19; 막 1:17). 시몬과 그의 동료들은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배와 그물과 기적적으로 잡은 많은 물고기를 버려두고 즉시 예수를 좇습니다.

        요컨대, 이 본문의 중심 사상은 시몬의 순종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르심에 있습니다. 이 본문을 이사야서 6장에 기록된 이사야의 소명 기사와 비교해서 읽으면, 이 점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여호와의 현현을 목도하고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고백합니다. 이어서 스랍의 하나가 제단에서 핀 숯을 취하여 이사야의 입에 대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사야를 부르십니다.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면서 여호와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사 6:8). 이 소명 기사의 중요한 요소들을 <하나님의 현현 → 이사야의 반응과 고백 → 하나님의 부르심 → 이사야의 응답>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현현 앞에서 자신의 부정함을 깨닫는 이사야의 모습은, 기적을 통해서 나타난 예수님의 신적 권세(하나님의 현현)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는 시몬의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자신의 부정함(죄인 됨)을 깨닫는 대목 뒤에 부르심과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이어지는 것도 두 기사의 공통점입니다. 이런 공통점에 근거해서 우리는 누가복음 5:1-11을 “시몬의 소명 기사,” 즉 예수께서 시몬을 부르시는 기사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본문이 주는 중심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들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사들이 아니라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고귀한 사명을 맡기십니다. 시몬과 같은 어부를 부르신 데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사람을 취하는 사명을 맡기셨고, 그의 설교를 통해서 3천 명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행 2:41).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는 사람들은 반드시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예수님의 정체와 자신의 참 모습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낮 시간에 깊은 곳에서도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끔 게네사렛 호수의 물고기들을 움직이신 분, 즉 자연계를 다스리는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한 권세를 가진 분으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전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분입니다. 심지어 그분의 명령이 우리의 경험이나 지식, 또는 상식과 맞지 않을 때에도 순종해야 하는 분입니다(그렇다고 하여 상식을 무시하는 신앙 행태를 조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상식을 무시하는 것이 깊은 신앙인양 착각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신 뒤에 시몬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꾼은 반드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단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예수님의 정체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참 모습도 압니다.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참 모습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 인간은 결코 자신을 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만이 시몬처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바르게 인식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를 시몬에게 알려주시고 그를 부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를 기적적으로 고쳐 주시고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심으로써 시몬에게 자신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숨어계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시고 알려주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시길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에서 시몬의 순종에 감동을 받기 전에, 시몬을 순종하게 만드시고 그에게 자신을 알려주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시몬의 순종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거나 그분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그분께 순종할 수 없습니다. 자연계는 물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을 제대로 만날 때, 비로소 우리도 시몬처럼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꾼으로 부름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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