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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고글]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 - 길성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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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671회 작성일 09-11-2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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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가 올라간 나무

누가복음 19장 4절



한국 교회의 거의 모든 교인들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용해온 개역 한글 성경에 그렇게 번역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개역 한글 성경의 누가복음 19장 4절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는 여리고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고 사람들이 하도 많아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달려가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삭개오는 매우 적극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달려가는\" 모습과 \"뽕나무에 올라가는\" 행동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삭개오가 올라갔다는 그 \"뽕나무\"는 어떤 나무였을까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뽕나무였을까요? 뽕나무는 가을에 낙엽이 지는 활엽수로 그대로 두면 높이 10-13m까지 자랍니다. 초여름에 오디가 달리는데 익으면 검정에 가까운 짙은 자주색이 됩니다. 어린 시절 오디를 따먹고 혓바닥이 자주색으로 물든 기억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뽕나무 잎은 누에를 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를 이런 종류의 뽕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개역 한글 성경을 개정한 \"개역개정\"에서는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것으로 수정하였습니다. 개역개정의 본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이렇게 본문을 수정한 것은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는 교인들과 그렇게 가르쳐 온 목회자들 모두에게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들은 시청각 도구를 동원하여 키 작은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장면을 신나게 설명해왔는데 그 나무가 뽕나무가 아니었다니, 이런 황당한 경우가 또 있을까요?
개역개정에서 \"뽕나무\"를 \"돌무화나무\"로 고쳐 번역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알려면 헬라어 본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말 번역 성경만 보아서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말 성경을 보면 누가복음 17장 6절에도 \"뽕나무\"가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그런데 여기서 뽕나무라고 번역한 헬라어 단어는 19장 4절의 단어와 다릅니다. 17장 6절의 단어는 \"쉬카미노스\"이고, 19장 4절의 단어는 \"쉬코모레아\"입니다. 개역 한글 성경에서는 두 단어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 \"뽕나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두 단어 중 \"쉬카미노스\"는 의미가 다소 모호합니다. 주로 뽕나무를 의미하지만, 때로 시카모 무화과나무(sycamore-fig tree)를 지칭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LXX) 아모스 7장 14절에서 이 단어는 시카모 무화과나무를 가리킵니다. 일부 주석가들은 누가복음 17장 6절에서도 \"쉬카미노스\"가 시카모 무화과나무를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의사인 누가는 이 단어의 본래 용례를 따라 뽕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새국제역(NIV)을 포함한 여러 영어 번역 성경에서도 뽕나무를 뜻하는 \"mulberry tree\"로 번역하였습니다(NRSV, NASB, ESV). 이 번역은 권위 있는 바우어 헬라어 사전(BDAG)과 로우-나이다 헬라어 사전(Louw-Nida)의 지지를 받습니다.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뽕나무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양잠업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아닙니다. 양잠업은 중세시대에 들어서야 지중해 지역에 처음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뽕나무는 목재로 쓰였고 그 열매는 식용과 염료로 쓰였습니다(참조. 마카비 1서 6:34). 이처럼 \"쉬카미노스\"가 뽕나무를 의미한다면 그와 다른 단어인 \"쉬코모레아\"를 뽕나무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동안 한국 교회가 사용한 개역 성경 누가복음 19장 4절의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뽕나무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는 어떤 종류였을까요? 이제 개역 성경이 \"뽕나무\"라고 번역한 \"쉬코모레아\"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전체에서 단 한 번 나오는데, 이런 단어를 전문 용어로 \"하팍스 레고메논\"(hapax legomenon)이라고 합니다. 하팍스 레고메논이란 표현은 헬라어를 영어로 음역한 것으로 그 뜻은 문자적으로 \"단 한 번 말하여진\"입니다. 바우어 헬라어 사전에 따르면, 쉬코모레아는 \"무화과-뽕나무\"(fig-mulberry), 또는 \"시카모 무화과나무\"(sycamore fig)입니다. 새국제역 영어성경(NIV)도 시카모 무화과나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다른 영어성경들에서는 \"시카모나무\"(sycamore tree)라고 번역했는데(KJV, NASB, NRSV, ESV), 이 나무의 학명이 라틴어로 \"피쿠스 시코모루스\"(Ficus sycomorus)인 점을 감안하면 \"시카모 무화과나무\"가 더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와 근동의 일부 지역에 자생합니다. 무화과나무 과에 속한 늘 푸른 나무로서 키가 20m(때로는 30m)까지 자랍니다. 하지만 나무의 본줄기가 굵고 짧은 편이라서 키가 작은 사람도 쉽게 올라갈 수 있고, 가지가 옆으로 넓게 퍼져서 커다란 그늘을 만듭니다. 여름에 무화과나무 열매와 흡사한 열매가 달리는데 열매의 크기는 작고(직경 2-3cm) 맛은 떨어집니다(그림 참조).
한 가지 사실을 제외하면, 시카모 무화과나무는 뽕나무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뽕나무가 잎이 지는 활엽수인 반면, 이 나무는 상록수입니다. 뽕나무가 오디를 맺는 반면, 이 나무는 무화과나무 열매와 흡사한 열매를 맺습니다. 뽕나무가 10-13m까지 자라는 반면, 이 나무는 20m까지 자랍니다. 한 가지 예외는 두 나무의 잎 모양이 흡사하다는 점입니다. 시카모 무화과나무의 잎은 뽕나무의 잎과 같이 사람의 심장 모양이며 크기는 길이 14cm, 폭 10cm 정도입니다. 잎 모양이 뽕나무 잎과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시카모 무화과나무를 \"무화과-뽕나무\"(fig-mulberry tree)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개역개정 성경은 이 나무를 \"돌무화과나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시카모 무화과나무가 무화과나무 열매와 모양은 흡사하면서도 크기는 작고 맛이 떨어지는 열매를 맺는다는 점에 착안한 번역입니다. 이 나무가 무화과나무 과에 속해 있으므로 \"무화과-뽕나무\"라고 하기보다 \"돌무화과나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로우-나이다 헬라어 사전도 이 나무가 자라지 않는 언어권에서는 \"야생 무화과나무\"(wild fig tree)로 번역할 것을 제안합니다.
시카모 무화과나무(돌무화과나무)는 누가복음 19장 4절뿐 아니라 아모스 7장 14절에도 나옵니다. 우리말 성경에 따르면, 아모스는 자신을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 소개합니다. 개역 성경과 개역개정에서 모두 \"뽕나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단어는 \"쉬크마\"(복수: 쉬크밈)인데, 뽕나무가 아니라 시카모 무화과나무를 가리킵니다. 영어성경에서도 이 단어를 \"시카모 무화과나무\"(NIV, NASB, ESV), 또는 \"시카모나무\"(NRSV), \"시카모나무 열매\"(KJV)로 번역하였습니다.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에서는 \"쉬크마\"를 \"쉬카미논\"이라는 헬라어 단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쉬카미논\"이라는 단어 때문에 뽕나무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이 나무는 시카모 무화과나무가 맞습니다. \"쉬카미노스\"가 주로 뽕나무를 가리키지만 때로 시카모 무화과나무를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쉬카미논\"은 시카모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아모스는 뽕나무가 아니라 시카모 무화과나무를 재배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시카모 무화과나무의 목재는 건축자재로 쓰였고, 열매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나무의 열매를 그대로 두면 떫어서 먹을 수 없습니다. 열매 위쪽에 손톱이나 예리한 도구로 흠집을 내주어야 잘 익고 단맛이 생긴다고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재배하다\"라고 번역한 아모스 7장 14절의 히브리어 단어 \"발라스\"는 본래 (덜 익은 시카모 무화과나무의 열매에) \"상처를 내다\"를 뜻합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양을 치는 일을 함과 동시에 더운 여름에 덜 익은 시카모 무화과나무의 열매 하나하나에 흠집을 내는 지루하고 고된 노동을 하는 농부였던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 개역개정이 누가복음 19장 4절에서는 뽕나무를 \"돌무화과나무\"로 고쳐 번역했으면서도 아모스서에서는 뽕나무라는 표현을 그대로 둔 것은 크게 아쉬운 일입니다(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에서는 돌무화과로 맞게 번역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삭개오는 뽕나무가 아니라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왜 개역 한글 성경은 뽕나무에 올라간 것으로 번역했을까요? 아마도 우리말 성경의 초기 번역자들이 번역 작업을 하면서 중국어 성경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국어 성경은 누가복음 19장 4절에 나오는 \"쉬코모레아\"를 뽕나무를 뜻하는 \"상수\"(桑樹)로 번역하였습니다. 아모스 7장 14절에 나오는 히브리어 단어 \"쉬카마\"도 같은 말로 번역하였습니다(중국어 성경 번역자들은 중국에 없는 시카모 무화과나무를 언어적이며 생태적인 깊은 고려 없이 상수와 직접 연결시킨 듯 합니다. 어쩌면 두 나무의 잎 모양이 같다는 점에 착안하여 뽕나무로 표기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초기 번역자들이 중국어 성경을 참조하기보다 주체적으로 헬라어와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를 세심하게 살펴서 번역했더라면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 잡은 것은 잘한 일입니다. 삭개오가 어떤 나무에 올라갔든지 그것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갔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말해야 할 것입니다. 삭개오는 여리고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시카모 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고 말입니다(끝).  

선지동산 53 게재 / 성경본문바로읽기(20) / 길성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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