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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고글] 우울증과 자살: 사랑에 결핍된 세대의 긴급한 구조신호 - 하재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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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785회 작성일 09-01-1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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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자살: 사랑에 결핍된 세대의 긴급한 구조신호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1. 우울증은 죄다?
우울증 환자들은 언제나 “죄인“이다. 어떤 죄를 지은 죄인이 아니라, 모든 잘못의 원인을 언제나 자신에게 돌리고 있기에 “스스로 된 죄인”이다. 때로 자신에게 파괴적일 정도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려 하는 것이 우울증 환자들의 특징이다. 오늘날 대중적인 효과로 인정받는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의 창시자인 아론 벡(Aaron Beck)은 이처럼 스스로를 비난 혹은 비하하는 사고방식을 치료함으로써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고통스런 질병으로 인해 이미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는 이들을 가리켜 거듭 죄인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병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무책임한 일이다.
오늘날 신앙인들 가운데도 우울증을 죄의 일종이며, 게으른 사람들의 사치스런 감기라고 판단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게 “편리하고 경박한” 판단은 우울증을 가진 성도들이나 가족들을 매우 당황스럽게 한다. 우울증은 결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게으른 질병이 아니다. 우울증은 자기 가치를 잃어버린 영혼의 질병이다.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진실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외로움과 고립에서 오는 지독한 질병이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가족의 사랑과 관심조차도 메말라 버린 세대에, 진정한 친밀함과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의 애타는 손짓과 같다. 가족과 이웃과 교회는 이들의 간절한 도움의 요청을 “죄”라고 쉽게 흘려버려서는 안된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기 인생의 가치를 모른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 하자면 그 환자의 주변에 있는 그 누구도 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말해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랑과 지지를 행동으로 표현해 주는 이가 없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들의 특징은 소외와 고독이다. 이들은 외롭고, 이들은 혼자다. 적어도 그들이 느끼는 절망에 있어서 그들 곁에는 아무도 없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데, 관계에서의 고립과 소외는 고통스런 자책과 생명에 대한 회의까지도 불러 일으킨다.
우울증 환자가 일단 자기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이후의 모든 경험은 “자동적으로” 자기 비난으로 이어진다. “내가 잘못해서… 내가 죄를 지어서… 내가 무가치해서…!” 버림받거나 학대를 당해도, “나는 학대를 받아 당연한 존재야!”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럴 때 걷잡을 수 없는 무가치감의 쓰나미 파도가 몰려온다. 길거리의 무관심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무가치해서 그런 것 같고, 조금만 상처를 입으면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생각하며 고통을 반복한다. 심지어 하나님께도 버림받았다고 믿게 된다. 자신에게 있는 모든 존귀한 가치가 숨통이 막히는 파도에 휩쓸려 가버린다.

2. 비난과 폭력은 우울증을 심화시킨다
이런 자신에 대한 무가치감이 깊어지면, 우울증 환자들의 몸과 마음이 함께 허약해진다. 우울로 인해 몸이 약해지고, 몸이 약해짐으로 인해 더 우울해진다. 점점 쇠약해지다가, 마침내 어느 순간에는 이런 자신의 존재를 끝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유익하다고 판단한다. 어쩌면 이것은 그들의 판단이라기보다는, 그들 자신이 그런 판단으로 내몰려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울증을 적극적 개념에서 죄라고 부를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서도 내몰리는 연약과 고통의 상황이라 판단하는 것이 옳다.
우울증의 원인을 하나로 지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셀 수 없이 다양한 원인들 가운데 공통적인 것은 자신을 지탱해 주는 사랑하는 관계의 상실이다. 미국의 목회 신학자 크리스티 뉴거(Christie Neuger) 교수는 두 배나 많은 환자군인 여성 우울증 환자들 가운데 다수가 남편으로부터 무시 혹은 폭행당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의 관계이어야 할 부부관계가 무책임한 방치와 무서운 폭력으로 이어질 때,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여성들의 자신에 대한 존재감은 바닥도 없이 추락한다. 더 나아가 자신은 그런 폭력을 당해도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그 비천한 자신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라 믿게 된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10대 청소년과 노인들의 우울증은 과도한 성적 경쟁으로 인한 자존감 상실과, 자녀와 사회로부터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노인들의 자살로 이어진다. 지나친 경쟁 속에서 지친 아이들에 대한 작은 비판이 그들을 인생의 극단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경제적 압박과 관계의 단절, 혹은 노년의 질병에서 오는 노인의 소외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도록 내몰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집안에 있는 빨랫줄은 자신의 소외와 고통을 끊어줄 수 있는 편안한 도구처럼 생각되고, 높은 아파트의 주차장은 자신을 편히 안아 줄 쿠션처럼 느끼게 된다. 결국 이들은 사랑의 관계의 결핍에서 오는 견딜 수 없는 소외의 고통 때문에 존재감을 상실하고, 생각과 감정이 기형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들은 생명과 죽음의 의미까지도 거꾸로 생각하게 되어버린 영혼의 환자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울증은 죄”라는 새삼스런 강조나 정죄가 아니다. 어떤형태이든 이들에 대한 비난은 이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지름길이다. 이들의 가슴에 비수가 되는 것은 인터넷의 악플일 수도 있고, 주변 가족과 이웃들의 비방일 수도 있다. 더구나 그들의 믿음의 연약을 탓하는 교회의 가르침이 그들에게는 큰 상처일 수도 있다.
우울증에 대한 모든 종류의 비난과 도덕주의적 판단은 연약한 이들의 어깨를 영적으로 절망하게 하는 연자 맷돌이다. 정작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관심을 통한 자기 영혼 가치의 회복이다. 그래서 교회와 가정에서는 “당신은 하나님께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당신은 참 가치로운 분입니다!” 라는 “당연한” 메시지를 말씀과 행동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나 자신만큼 악하고 나쁜 인간은 없다”며 스스로 불필요한 짐을 지는 그들에게, 특히 가까이에 있는 배우자와 가족, 교회의 동료들이 무조건적인 이해와 공감, 그리고 지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3. “죽음”이라는 말에 즉각 행동하자
우울증 환자들 가운데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죽음”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일들이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가족이나 친구들은 농담으로 여기거나, 혹은 믿을 수 없는 표현에 화를 내기도 한다. 물론 그런 분노의 뒤에는 그 사람을 아끼는 마음과 사랑의 관심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좀 더 깊이 그 증상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화를 내며 호통을 치는 것 보다 마음을 공감하는 깊은 사랑의 말을 할 것이다.
“얼마나 힘들면 그런 말을 하겠니? 그래, 네 마음 조금은 알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니 내가 화가 날 만큼 마음이 아파.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니까!”
목회자나 상담자, 혹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죽음”을 언급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 언급하는 말을 지나치거나 무시하지 말고, 죽음을 얼마나 실제적으로 생각하는지, 약이나 줄이나 아파트 등 구체적 방법을 생각했는지 반드시, 그리고 즉시 점검해야 한다. 자살에 대한 우울증 환자의 계획이 구체적일수록 실행 가능성이 높다. 즉시 가족과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고, 필요하면 병원 입원도 고려해야 한다. 우울증이 자살로 연결되는 경우는 3.4%에 불과하지만, 자살한 사람의 60% 이상은 우울증의 정서 장애를 앓았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우울증 증상들은 30-40대 사이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한창 아이들을 키우고 있을 엄마들, 혹은 결혼하여 갈등이 표면화되는 아내들에게서 흔히 발견된다. 그 때 남편들은 사회적으로 바쁘고 분주하다 할지라도, 아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체중이 심각하게 감소하며, 자주 울고, 좋아하는 것들을 멀리하는 모습을 보면 아내에 대한 관심을 즉시 새롭게 해야 한다. 대개 아내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바깥의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버리는 남편들의 무관심과 폭력, 그리고 그것을 방치하는 사회의 문화가 지금도 아내들의 우울증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저러다 괜찮아 지겠지!” “믿음이 있는 사람이니 걱정하지 않아!” 하고 방치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경험할 수 있다. 때마다 마음을 살피고 몸을 살피면서, 정말 그 환자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
남편과 부모, 혹은 영적 지도자들의 권위주의적 처방은 오히려 사람을 해치고, 질병을 심화시킨다. 이들의 문제가 겉으로, 혹은 본질적으로 고쳐야 할 죄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이 질병을 죄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해서는 환자를 치료할 수가 없다. 믿음이 부족하다는 판단이나, 사람이 게을러서 그렇다는 빈정댐, 혹은 “그것은 너의 책임인데 누가 도울 수 있겠는가?” 하는 무관심한 태도는 치료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 태도이다.

4. 오직 사랑과 관심만이 치료할 수 있다.
무한 경쟁과 성취의 뒤안길에서, 자신의 무력함과 무가치함을 폐부 깊숙이 느끼는 이들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복음에 의한 영혼 치료를 통해 가능하다. 우리 기독교의 신앙에는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최고의 명약들이 즐비하다.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 그리스도의 특별한 희생, 성령 하나님의 충만과 위로가 그것이다. 거기다가 영혼의 소외를 해소시킬 수 있는 교회 공동체가 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주일학교로부터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보여주어야 한다. 가정에서 친밀한 사랑이 회복되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없다고 하면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이것은 언어도단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신 이유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를 내가 미워할 수 있는가? 자기 부인과 자기 절제의 메시지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죄악된 자기 중심성에 대한 영적 경고일 뿐이다.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할 때,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도 참조점은 자기 사랑인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어떻게 자신의 몸과 영혼을 소중하게 돌볼 수 있는지 가르치고, 교회의 영혼 돌봄을 통해 한 영혼의 소중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데 성도가 어떻게 자살 할 수 있는가? 그렇다. 자살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성도들도 자살하고 있다. 많은 자살사건의 경우, 이들 곁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진정으로 느끼게 해 줄 사람들이 없어서 그들은 이 비극적인 선택을 감행한다.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가까운 사람들의 무조건적 격려와 사랑의 회복이 시급하다. 사실 우울증 환자들만큼 작은 사랑의 노력에 감동하고 치료받기 쉬운 사람들도 없다. 교회 공동체는 이 일을 해 줄 수 있다. 개인의 지지와 공감, 가정의 회복과 치유를 교회는 감당할 수 있고, 또 더 적극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교회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사랑과 칭찬과 공동체에로의 초청을 통해 병든 영혼들을 살릴 수 있다. 다만 매우 사소한 일에서도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분들이기에 교회 지도자들은 말과 태도에서 비난이나 부담스럽다는 인상이 묻어나지 않도록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은 비난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안테나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의 암울한 그림자인 우울증과 더불어 살고 있다. 때로 그 낯선 증상들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우울증을 양성 내지 방치하고 있다. 자신의 죄를 과다하게 느끼며 스스로 형벌을 받고 있다고 자학하는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마땅히 위로와, 해방과, 자아의 소중함에 대한 복음의 메시지가 선포되어야 한다. 그리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과 가족의 사랑이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허락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어떤 지도자들은 거꾸로 가고 있다.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는 지도자는 지식으로 가르쳐야 할 일과, 가슴으로 함께 느껴야 할 일을 구별해야 한다. 지금도 그늘진 한 구석에서 영혼의 고통을 앓고 있는 이들을 발견하고 치유하기 위해 교회는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그 영혼에게 복음의 핵심이요 치료의 명약인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기독교보 10월 11일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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