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 커뮤니티

저서/논문/기고

기고|저서|논문

고신 커뮤니티연구성과저서/논문/기고

기고 [기고글] 변종길 교수 - 천국에 상급이 있는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006회 작성일 13-06-25 16:31

본문

선지동산 64호 (신약 난제 해설 [6])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천국에 상급이 있는가?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요즈음 천국에 상급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신실한 성도들조차도 과연 천국에 상급이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의문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성도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과연 천국에 가면 상급이 있는 것이며 또 상급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상급의 차이?

천국의 상급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만일 그런 차별이 존재한다면 그런 곳을 과연 천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한다. 천국에는 차별도 없고 시기심도 없고 위화감도 없는 곳, 완전히 평등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천국에 가서도 그런 차별이 존재한다면 천국은 천국답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성경에서 ‘상’이란 말은 모든 성도들이 공평하게 받는 ‘구원 자체’ 또는 ‘천국 자체’를 의미하며, 성도 각자가 다르게 받는 ‘차등 상급’은 아니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금 면류관’을 받고, 다른 사람은 ‘개털 모자’를 받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얼핏 듣기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 세상에서 차별받고 서러움 받으며 한평생을 살았는데 천국에 가서 또 다시 차별을 받는다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금 면류관’과 ‘개털 모자’ 이야기도 우습고, ‘맨션’과 ‘초가집’ 이야기도 우습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그렇게 감정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다. 성경을 펴서 차근차근히 살펴보고 성경을 따라 생각해야 한다. 과연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하늘에 상이 많다

신약 성경에 보면 ‘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구절들이 많다. 예수님 때문에 욕을 얻어먹고 핍박을 당하는 천국백성을 향해 예수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 너희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신다(마 5:12). 여기서 ‘상’(misthos, 미스또스)은 원래 노동자에게 노동의 대가로 지급하는 ‘임금, 삯’(pay, wages)이란 뜻인데, 또한 어떤 일에 대한 대가로 갚아주는 ‘보상’(reward, recompense)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이 구체화될 때에는 보상(報償)으로 갚아주는 ‘상’(賞, a reward)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상’을 모든 성도들이 동등하게 받는 ‘구원’이나 ‘영생’의 의미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크다’(polus, 폴뤼스)는 말은 원래 ‘많다’는 뜻이다. 상이 ‘많다’는 것은 ‘적다’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즉, 상을 많이 받는 사람도 있고 적게 받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의 주장처럼 ‘천국 자체’를 ‘상’(보상)이라고 했다면 ‘많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약속된 ‘많은 상’은 예수님 때문에 욕을 얻어먹고 핍박을 당할 때에 주어지는 보상이다. 이것을 ‘천국 자체’로 본다면 우리의 ‘행위’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행위구원이 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마 10:41-42) 여기에 보면 각자 자기가 행한 대로 받는 ‘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냉수 한 그릇으로 얻는 ‘상’은 ‘구원’이나 ‘영생’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자기의 ‘선한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상’은 각자의 선행에 대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보상으로서의 ‘상’이란 뜻이다. ‘구원’과는 구별되는 별도의 ‘상급’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

그 외에도 성경에는 ‘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구절들이 아주 많다. 그 중에는 물론 천국에 들어가는 것, 영생 얻는 것 자체를 ‘상’ 또는 ‘보응’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계 11:18, 롬 2:6-7). 이 경우의 ‘상’ 또는 ‘보응’은 구원이나 영생과 동일시할 수 있다. ‘영생’ 또는 ‘구원’은 모든 성도들이 받는 ‘기본적인 상’이며 ‘제일 큰 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 외에 구원받은 자가 각자 행함에 따라 받게 될 ‘상’ 또는 ‘보상’에 대해서도 많이 말하고 있다(마 6:1, 눅 6:35, 고전 3:8, 14-15, 9:17,18, 고후 5:10, 빌 3:14, 히 10:35, 11:26, 계 22:12; 또한 마 16:27, 막 10:40, 롬 14:10-12 등). 이 ‘상’ 또는 ‘보상’은 사람마다 다르며, 각자의 행함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다.

이렇게 상급에 차이가 나는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며 하나님의 공의에 부합한다.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다 똑같으며 상급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을 따른 것이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거부하는 것이 된다. 마치 공(功)을 많이 세운 신하에게 임금이 상을 내리려 할 때, 신하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된다는 이유로 상을 반대하는 것과 같다. 그런 신하는 임금의 호의와 기쁜 뜻을 무시하는 대죄를 짓게 된다.

 

영광에 있어서의 차이

그러나 우리가 선한 일을 했으니 마치 마땅히 상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것은 가톨릭의 공로사상이다. 상은 ‘권리’(權利)가 아니라 주는 자의 ‘호의’(好意)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다 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고 고백하여야 한다(눅 17:10). 마치 상을 받는 신하가 “성은이 망극합니다. 신은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상’은 어디까지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에서 받게 될 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성경은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 자는 모두 다 천국에서 영생과 구원을 누리고 또 천국의 기쁨과 주님과의 복된 교제를 누릴 것이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이 다 받는 공통의 상이다. 그러나 그 외에 각자 행한 대로 받는 상(보상)이 또 있다.

이 상에 대해서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며 또 굳이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이에 대해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그의 「개혁교의학」 제4권 제일 마지막에서 각자 ‘영광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 그러나 빛남과 영광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par. 580)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아 다 천국에 가지만, 각자 행한 일을 따라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과 영광이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족하며 이에서 지나치는 것은 인간의 사변이며 교만이다.

 

64호 선지동산 게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73건 6 페이지
기고|저서|논문 목록
[기고글] 이신철 교수 - 성적 비행(非行)과 선교적 책무
성적 비행(非行)과 선교적 책무   이신철 교수(선교학)   최근에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외교를 수행하던 윤OO 대변인이 자기의 수행하던 인턴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미 경찰에 고발을 당함으로써 대통령은 물론이고, …
2013-06-25
[기고글] 변종길 교수 - 천국에 상급이 있는가?
선지동산 64호 (신약 난제 해설 [6])   천국에 상급이 있는가?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요즈음 천국에 상급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2013-06-25
[기고글] 경청과 충고의 비율 50:10 - 하재성 교수
경청과 충고의 비율 50:10   하재성 교수(실천신학)   경청과 충고의 비율은 50:10이 바람직하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50분 들어 준 이후 남은 10분간 분석과 판단과 충고를 하는 것이 사람을 바꾸는 시간의 비율…
2012-11-19
[기고글] 아바 아버지인가? 아빠 아버지인가? - 변종길 교수
선지동산 63호 (신약 난제 해설 5)   아바 아버지인가? 아빠 아버지인가?   변종길 교수(신약학)     개역개정판에는 예전의 성경에 비해 달라진 것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 특이한…
2012-11-19
[기고글] 놓치기 쉬운 개체교회의 선교적 책무 - 이신철 교수
놓치기 쉬운 개체교회의 선교적 책무 이신철 교수(선교학)   일반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후원하는 것이 개체교회의 선교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1980년대부터 이런 선교적 책무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 지난 30년 동안 수많…
2012-11-19
[기고글] 사랑이 변화시킨다 - 하재성 교수
사랑이 변화시킨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인 중학생 한 명을 상담한 적이 있었다. 가출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약한 아이들을 때리기도 하고, 그 아이들의 물품을 갈취하였다. 심지어는 자신도 그 무리의 아이들에게 이용당하여 자기 부모…
2012-04-30
[기고글] 선교와 책무 - 이신철 교수
선교와 책무 선교 책무에 대한 논의가 2005년 제2회 방콕선교포럼에서 있었고, 2011년에는 미국 뉴 헤이븐 OMSC에서 열린 Korean Global Mission Leadership Forum에서도 선교책무를 주제로 다루었다. 한국교회가 선교사…
2012-04-30
[기고글] 7년 대환난은 정말 있는가? - 변종길 교수
7년 대환난은 정말 있는가?   오늘날 마지막 때에 ‘7년 대환난’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님 재림 직전에 문자적인 의미에서 ‘전 3년 반’, ‘후 3년 반’의 7년 대환난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다시 ‘환난후 휴거설’, ‘…
2012-04-30
[기고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목회적 대화 이야기 - 하재성 교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목회적 대화 이야기 한 번은 어느 역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기사님은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몸집이 작고 주름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내가 택시에 오르자마자 택시 기사님은 보고 있던 신문을 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서울시…
2012-04-30
[기고글] 고신 현지선교부의 역할 강화와 사역적 책무 - 이신철 교수
고신 현지선교부의 역할 강화와 사역적 책무 필자는 지난 호에서 선교사의 사역적 책무와 관련하여 선교사는 현지선교부에 소속하여 사역할 필요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고신 선교사들이 고신 세계선교부에 속하여 그들의 사역적 책무를 감당하기 …
2012-04-30
[기고글] 주여 주여 하는 자 - 변종길 교수
주여 주여 하는 자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한다(마 7:21). 여기서 ‘주여 주여 하는 자’는 누구일까? 한…
2012-04-30
[기고글] 예루살렘 성도들의 부활 - 변종길 교수
  예루살렘 성도들의 부활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일어난 부수적 현상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겨진 것이다(마 27:51상, 막 15:38). 다른 하나는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2011-11-03
[기고글] 선교사의 책무와 현지선교부 - 이신철 교수
선교사의 책무와 현지선교부 필자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들의 사역적 책무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지선교부의 역할의 실효성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쓰고자 한다. 교회의 선교의 가장 간단한 구도는 ‘교회가 선교사를 파…
2011-11-03
[기고글] 목사는 부르심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 김순성 교수
목사는 부르심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목회자들이여, 끝까지 한길을 걸어가라 -목회자로서의 자신과 사역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가?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혼란을 겪은 적이 없는가?목사로서 당신의 장래 목표는 무엇인가?목사가 된다는 것처럼 …
2011-11-03
[기고글] 선교책무,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 이신철 교수
선교책무,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한국의 개신교회 선교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으나, 교회들의 적극적인 후원을 통하여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운동이 점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서울 올림픽을 지나고, 국내…
2011-04-19
[기고글] 자기파괴적 열심에서 탈출해야 한다 - 김순성 교수
자기파괴적 열심에서 탈출해야 한다 - 목회자들이여, 자유와 기쁨의 멍에를 매라 - 목회사역이 당신에게 중압감으로 다가오는가? 당신의 사역을 이끄는 열정 밑바닥에 깔린 동기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사역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창의적인 …
2011-04-19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