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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고글] 7년 대환난은 정말 있는가? - 변종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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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055회 작성일 12-04-3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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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대환난은 정말 있는가?




  오늘날 마지막 때에 ‘7년 대환난’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님 재림 직전에 문자적인 의미에서 ‘전 3년 반’, ‘후 3년 반’의 7년 대환난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다시 ‘환난후 휴거설’, ‘환난중 휴거설’, ‘부분 휴거설’, ‘환난전 휴거설’ 등으로 나뉘면서 성도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이 세상에서의 삶
  그러면 과연 마지막 종말 때 곧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7년 대환난’이 있는가? 이에 대한 개혁주의적 견해는 ‘환난’ 또는 ‘대환난’은 있지만 문자적 의미의 ‘7년 대환난’은 없다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이 세상에서의 삶 전체가 환난의 시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환난은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고 마귀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30세의 야곱은 애굽의 바로 앞에서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하였다(창 47:9; cf. 시 90:10).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향하여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다(요 16:33). 예수님의 제자들은 당시에 이미 환난을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환난을 당하여 밧모 섬에 유배되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 안에서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말한다(계 1:9). 서머나 교회를 향해 주님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고 말씀하셨다(계 2:9). 따라서 환난은 초대교회에 이미 있었으며 아담의 타락 이후 이 세상에 계속 진행되어 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창 5:29, 마 10:16, 요 16:33, 딤후 3:12 등). 이런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현재적 의미에서의 ‘환난’에 대해 많이 말한다(롬 8:18,35,36, 고후 1:4,8, 2:4, 4:17, 6:4, 7:4, 8:2, 엡 3:13, 빌 4:14, 살전 1:6, 3:3,7, 살후 1:4). 
 
대환난은 언제?
  그러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환난’은 이 세상 역사 기간 동안에 계속된다고 할지라도 ‘대환난’은 마지막 종말 때 곧 예수님 재림 직전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물론 마지막 때에 큰 환난이 있겠지만, 그것은 마지막 종말 때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성경은 야곱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큰 환난’이 있었다고 말한다(행 7:12). 예수님은 예루살렘 멸망 때에 있을 환난에 대해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하셨다(마 24:21; 눅 21:23). 뿐만 아니라 두아디라 교회의 거짓 선지자 이세벨에 대해서는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겠다고 하셨다(계 2:22). 따라서 ‘대환난’이란 꼭 마지막 종말 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역사 기간 전체에 걸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계시록 7장 14절의 ‘큰 환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큰 환난’은 꼭 마지막 때의 ‘대환난’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모든 성도들에게 큰 환난과 어려움의 시기이다(cf. 요 16:33, 살전 1:6, 딤후 3:12). 특히 사도 요한 당시의 황제숭배 강요로 인한 핍박과 환난을 염두에 두고서 여기에 ‘(그) 큰 환난’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다고 생각된다(Beale).

‘7’이란 숫자의 상징성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에서 ‘7’이란 숫자는 꼭 문자적 의미에서의 7년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일곱 영들이나 일곱 천사들을 뜻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부’와 ‘성자’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성령’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런데 ‘일곱 영’으로 표현한 것은 ‘성령의 충만한 사역’을 나타내기 때문이다(Greijdanus; cf. 계 5:6). 이것은 또한 구약 시대 성막에 있던 ‘일곱 등잔’에 그 배경을 가지고 있는 표현이다(출 25:31-40, 37:17-24, 40:25).
  성경에서 ‘칠(7)’은 완전수이며, 따라서 그 절반인 ‘3과 1/2’은 환난의 때를 상징한다(계 11:9, 12:14; 단 7:25, 12:7, 약 5:17). 그래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계 12:14)는 교회가 사탄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환난의 기간’을 가리킨다(cf. 계 11:9). 따라서 이 기간은 재림 직전의 특정한 기간 곧 문자적 의미의 ‘3년 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시대 전체에 해당되는 표현이다. 교회시대 전체를 통해 교회는 환난과 핍박을 당한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 교회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간섭으로 안전하게 보호된다(계 12:13-17).
  이런 의미에서 이방인들이 거룩한 성(교회)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라고 한다(계 11:2). ‘마흔 두 달’은 3년 반이며, 이것은 7년의 절반 곧 환난의 기간을 의미한다(cf. 계 13:5). 그런데 ‘두 증인’(두 선지자 = 복음을 전하는 교회)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할 것이라고 한다(계 11:3). ‘1260일’(1080일 + 180일)은 42개월이며 3년 반이다. 따라서 ‘환난의 기간’과 같은데, 이 기간은 또한 ‘복음 전파의 기간’이기도 하다. 복음 전파는 주님 오실 때까지 교회시대에 항상 있는 것이므로(마 24:14, 행 1:8, 딤후 4:2), ‘1260일’은 곧 교회시대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시대 전체가 환난의 기간인데, 이런 환난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예언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계 10:11). 같은 기간을 가리킴에도 불구하고 ‘마흔 두 달’로 말하지 않고 ‘1260일’로 말한 것은 복음은 날마다 전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깨어 근신하여야
  따라서 마지막 종말 때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무슨 특별한 ‘대환난’이 있는 것처럼 요란을 떠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물론 마지막 종말이 다가올수록 이 세상은 더욱 악해지고 환난과 핍박도 많아지겠지만, 그렇다고 그 전에 환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이 세상에는 크고 작은 환난이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이다(계 11:5-6, 12:14-16, 17:14, 요일 5:18).
  따라서 우리는 종말이 다가왔다고 쉬 요동하거나 두려워하면 안 된다(살후 2:2). 그 날이 가까이 옴을 볼수록 우리는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며(마 24:4,11,24-26), 더욱 깨어 근신하며 각자 맡은 일에 충성하여야 할 것이다(마 24:42-51, 벧전 5:8). 



선지동산 62호 게재 / 신약난제해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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