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기사 고신을 빛낸 이달의 인물(2) - 한부선 선교사, 고신선교의 초석을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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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선(Bruce F. Hunt, 1903-1991) 선교사, 고신선교의 초석을 놓다
한국 교회의 ‘신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수호하기 위해 태동한 고신 교회의 신학과 신앙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자신을 ‘made in Korea’라고 부를 만큼 한국과 고신 교회를 사랑했던 한부선 선교사라는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한부선은 1887년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로 조선에 파송 받은 한위렴(Willam B. Hunt) 선교사의 장남으로 1903년 평양에서 출생했다. 그는 평양에서 자라나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톤 신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돌아와 청주에서 선교했다. 그는 미국 북장로교회가 포용주의 신학을 수용하자 1936년 교단을 탈퇴해 미정통장로교회(OPC)에 참여했다. 1937년부터 만주에서 선교하며 신사참배 반대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1942년 미국으로 추방당했다. 해방 이후 1946년 한국에 돌아와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사역하면서 고신 교회의 태동과 성장에 큰 공헌을 했다. 한부선 선교사가 한국 교회와 고신 교회에 세 가지로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1. 순교적 신앙의 표본
1938년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한부선은 총회 장소에서 일본 경찰에 끌려 나가면서도 믿음을 굽히지 않고 “항의합니다!”라고 외쳤고, 이후 만주에서 신사참배가 우상숭배임을 명시하고 이에 동참하지 않을 것임을 서약하는 언약 문서를 작성하여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1941년 일제에 의해 체포된 그는 단둥 형무소에서 7개월 옥고를 치른 후 미국으로 추방당했다.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받은 고난은 한상동, 주남선 목사 등 출옥 성도들과 그를 믿음 안에서 하나로 묶어 해방 후 고신 교회가 태동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부선이 감옥에서 겪은 신앙적 체험을 기록한 『언약의 노래』(For a Testimony)는 고신 교회 성도들에게 순교적 신앙의 표본이 되었다.
2. 고려신학교의 초석
한국이 해방을 맞이하자 1946년 10월 28일 재입국한 한부선은 다음 날 방문한 한상동 목사에게서 고려신학교에서 함께 사역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한부선은 11월 5일 경건회 설교를 시작으로 고려신학교에서 헬라어, 출애굽기, 에베소서, 교회사, 설교학, 영어 등 여러 분야를 가르쳤다. 그리고 주말이면 전국 교회를 돌며 설교하고 받은 사례비 전액을 신학교 운영을 위해 헌금했으며 기숙사 학생들의 식량과 성경을 조달했다. 또한 개혁 신학과 정신을 확산시키기 위해 《파수꾼》 등 잡지를 간행했다. 그가 고려신학교에 헌신한 것은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으로 무장된 목사들을 양성하여 한국 교회를 정화하고 바로 세우려는 열망 때문이었다. 고려신학대학원이 한국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학교로 성장한 데는 한부선 선교사의 이런 헌신이 있었다.
3. 고신 교회의 전도와 선교를 견인
한부선 선교사는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전도자였고 고신 선교의 초석을 놓았다. 그는 부산 YFC 활동을 주도했고, 한명동 목사와 함께 고려신학교주최로 1948년 8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제1회 청소년 수양회를 개최했다. 이 집회는 1952년 7월 제6회 청소년 수양회에서 전국 학생신앙운동(SFC)이 창립으로 발전하였다. 학생신앙운동(SFC)은 출옥 성도의 신앙과 회개 운동을 다음 세대로 확산하여 고신 교회가 정체성을 지키며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부선은 고신 교회의 해외 선교도 견인했다. 1956년 고신 총회가 해외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하자 그는 대만을 선교지로 제안했다. 그에 따라 고신 총회는 1957년 김영진 선교사를 대만으로 파송했다. 이는 고신 교회가 세계 선교의 길을 걷게 된 역사적 기점이 되었다.
한부선 선교사는 1976년 73세에 은퇴해 미국으로 돌아가 미주 한인교회들을 위해 사역하다 1992년 89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와 사역하고 그에게 배웠던 박윤선 목사와 이근삼 박사가 증언했듯 한부선 선교사는 “진실주의를 몸소 실행으로 가르친” 참된 목자였으며, “진실한 선교사, 훌륭한 신학 교수, 진리와 정의의 사람”이었다. 한부선 선교사가 남긴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의 유산은 고신 교회와 고려신학대학원 그리고 고신 선교사들의 사역 현장에서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김성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선교학)
※ 위 연재내용은 고신언론사와의 공동프로젝트 추진 업무 협약에 따라 기독교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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