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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2014.8.30일자 기독교보 시론에 게재

 

보이지 않는 것들

 

1980년대 중반, 필자가 고신대 신학과 학생이었을 때, 송도에서 공부하던 신대원 선배 여러분들이 영도 캠퍼스에 와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친 적이 있었다. “고신대 의대를 폐지하고 경건한 신학교육의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신학교와 의대가 송도 캠퍼스의 같은 공간을 사용하면서, 음주나 흡연을 비롯한 불신 학생들의 여러 가지 그릇된 모습들이 미래 교회의 지도자가 될 신학생들의 경건훈련에 큰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송도는 우리 고신 교회의 순교 신앙의 전통을 대변해주는 매우 특별한 곳이었다. 1941년 전후로 한국의 많은 목사들이 ‘일본 귀신 천조대신이 하나님보다 더 높고 위대하다’고 고백하며, 일본의 승려들이 집례 하는 미소기바라이를 받았다. 그들이 신도침례로 이 땅의 교회를 더럽혔던 바로 그 송도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신사참배 회개를 외치는 고려신학교가 섰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송도 캠퍼스는 순교자들의 신앙을 가진 성도들의 눈물어린 기도가 어린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고신은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주신 바른 신앙과 신학의 이정표였다. 그런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당시 신학생들은 아마도 양심의 고통과 영적인 고민이 많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우리 고신교단은 신학교에 대한 또 한 번의 역사적인 결단을 내렸다. 그것은 고신과 한국 교회를 위한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결단이었다. 이는 곧 한반도의 통일과 대륙 선교를 꿈꾸며, 교단교회들이 밀집한 부산을 떠나 수도권의 관문인 천안으로 이전하는 것이었다. 이는 아름다운 전통과 신학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하는 신앙적 결단이었다. 온 교회의 기도와 총회의 오랜 토론 끝에 우리 신학교는 마침내 현재 우리 신학교육의 터전인 천안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사실 송도와 다르게 천안 캠퍼스는 낯설고 외딴 곳이어서, 그 동안 송도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던 많은 분들에게는 좀처럼 정들이기가 힘든 곳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천안의 신대원은 20년 가까운 목사 후보생들의 영적 요람이 되었고, 총회 및 수많은 성도들의 새로운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캠퍼스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기도실, 고신역사기념관, 일심정원, 교부학서원 등등은 우리 고신 교회가 자랑하고 사랑할 만한 새로운 자산들이 되었다. 특히 고신 역사기념관은 우연하게도 근거리에 목천 독립기념관, 병천 유관순 기념관으로 이어지는 항일정신의 벨트라인을 이루어, 이곳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우리 교단 정신의 자랑스런 뿌리를 확인하게 하는 의미 깊은 교육의 현장이 되었다.

 

물론 천안 이전의 과정 자체가 여타 교단들로부터 역시 고신이라는 탄성을 자아낸 것도 사실이다. 고신교회는 다른 교단들과 달리, 부평과 경북 신학교 캠퍼스를 정리하고 천안 신대원으로 모든 신학교육을 일원화함으로써 새롭게 도약을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천안 이전을 결정한 교단 선배들의 안목은 벌써 북한 및 대륙 선교와 세계를 향하여 있었고, 다른 교단들은 우리 신대원의 천안 진출을 매우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안정된 공간과 환경에서 우리 신대원은 새로운 차원의 신학 교육을 주도해왔다. 그것은 이전 송도에서와 다른, 혹은 한국의 다른 어느 신학교가 엄두를 내지도 못 할 만큼 특별한 것들이었다. 우선 교수들이 학생들과 가장 가까운 공간에 함께 거주하며, 경건훈련과 신학교육을 함께 주도해 왔다. 선생들은 학생들이 지근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가르침과 삶에 일치하는 모범이 되어야 했고, 그것이 인격적인 신학교육의 큰 틀이 되었다.

 

또한 자신들이 사역하는 교회들과 다소 격리된 천안 캠퍼스에서 일주일을 생활하면서 우리 신학생들은 한 주간 동안 오로지 신학 수업과 경건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전 송도에서의 신대원 생활을 회상해보면, 특히 수요일 저녁 시간이 되면 늦게까지 학교 도서관에 공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없었다. 부산 경남 지역에 있는 교회 전도사들로 섬기면서, 수요일 저녁 예배 설교들을 담당하는 분들이 많았고, 자연히 학교에서 요구하는 공부의 양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주중의 여러 의무에서 자유로운 현재의 환경에서 우리 신학생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히며 신실한 사역자가 되기 위해 공부와 기도에 집중한다. 또한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공동체를 배우고, 자신만이 아닌 이웃을 배려하고 섬기는 법을 삶으로 훈련받고 있다. 고신 역사에서, 혹은 한국의 다른 어느 신학교의 역사에서, 이처럼 인격적이고 집중된 신학 교육의 환경을 가진 적은 없었으리라 확신한다.

 

이 값진 자산들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일천 억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고신의 자랑스런 전통과 그것을 이어가는 지금 우리 신학교의 경건한 신학 교육이다. 구태여 그것을 당장 현금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만일 이런 결정이 순교자들의 마음의 고향 송도를 떠나며 천안 이전을 결정했던 선배들보다 더 나은 선교적 대의와 신앙적 명분을 결여하고 있다면, 그것은 곧 고신교단의 불명예와 오랜 기간 동안의 신학교육의 파행을 가져오는 큰 오점이 될 것이다. 돈으로 회복할 수 없는 이 큰 손실에 대해서는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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