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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인격성 회복

 

하재성 교수(실천신학)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인간 개개인의 “영혼”은 특별히 영적인 관계성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아를 이야기한다. 또한 건강한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이웃들과 일관성있게 지속적으로 교제의 관계를 유지하는 전인적 존재이다. 이런 우리의 영혼은 한 인간으로서 받아야 할 필수적인 돌봄이나 인격적 관계의 영양이 결핍될 때 영향을 받거나 왜곡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아무도 자신을 격려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우울증을 앓을 때, 그 질병은 부득이하게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인격은 인격으로 치료될 수 있다. 만일 우울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인격과 영혼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충만함을 바르게 입는다면 인간의 원래적 인격성은 급속히 회복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목회자나 상담자, 그리고 건강한 기독교인들의 공감과 수용이 중요한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좋은 그리스도인들의 인격이 병들고 우울한 영혼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건강한 인격체로 회복할 수 있다.

 

1990년에 접어들어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과 청소년의 종교성(religiousness)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이 등장하면서, 부모가 어린 아기들을 사랑할 때 후에 청소년이 된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이는 두가지 면에서 매우 의미있는 연구이다. 첫째는 인간의 종교성이 어머니와 밀접하게 관련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더이상 전통적인 아버지 상(father-figure)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실제적으로 양육하고 돌보는 어머니와의 질적인 애착관계에 의해 신앙이 이어지고 있음을 관찰한 것이다. 어린 아기를 따뜻하게 돌보는 지속적인 모성에 의해 신앙이 매개될 수 있음을 이 연구들은 보여 주었다. 둘째는 부모가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리 다른 조건들이 만족스럽다고 해도, 종교적 가치를 전달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좋지 못하면 자녀들은 자라면서 엄마의 신앙을 선택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생활에 성실한 부모들이 만일 자신의 아이를 인격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자라면서 교회를 떠날 가능성이 크다. 부모에게 사랑받지도 못하고 인격적으로 위로도 되지 않는데, 그런 부모를 따라서 예수를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인격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차라리 집에서 예수를 잘 믿는 척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자녀들에게 무관심하거나 비인격적인 부모가 신앙을 강요할수록 자녀들은 거꾸로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부모의 강요가 오히려 아이들의 믿음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단순하다. 아이들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따르고, 그들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닮아간다. 자녀들에 대한 인격적 양육은 부모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가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진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선지자 사무엘의 아들들이 불의하여 뇌물을 받았다는 것은 신자들의 자녀 교육에 중요한 경고를 준다. 부모가 너무나 바빠서 자녀들과 사랑으로 함께 할 시간이 없을 정도라면 그 자녀들의 건강한 영적, 인격적 성장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까다롭고 하루 종일 잔소리만 하는 엄마 아래서 자란 아이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언제든지 트집을 잡아 기어코 지옥에 보내실 것만 같은 하나님을 믿게 된다. 부모의 애착과 인격적인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한 인격적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청소년기에 뜨겁게 믿는 아이들의 신앙은 귀하지만, 그들의 인격성 발달에 있어서 교회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갑작스럽고 뜨거운 회심을 하는 청소년들 가운데는 부모와의 불안정한 애착 관계를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강한 회심을 경험하고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체험한 것은 영적으로 유익하다. 하지만 이후에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떤 형태로든 부모와의 불안정한 애착은 자연스럽게 공동체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한다고 해서 한순간 성숙한 인간관계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성숙한 열매를 맺기까지 갑작스런 회심을 경험한 사람들은 인격적인 공동체의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비인격적인 아버지의 폭력적 양육을 그대로 물려받은 사람들은 자기 자녀들의 양육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이들은 더 나아가 교회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많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쉽게 화를 내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며, 인정받기 원하고, 공격적인 자기애적 성격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리더들은 이런 사람들의 마음의 표적이 되어, 아무런 이유없이 맹목적인 사랑과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불안정한 애착이나 비인격적인 양육에서 비롯된 성격의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역시 목회자, 리더, 그리고 상담자들의 성숙한 또 다른 인격이다. 갑작스러운 영적 체험을 한 이들이 이유없이 목회자를 비방을 하거나, 혹은 필요 이상의 지나친 애착을 보일 수 있다. 여기에는 성숙한 인격자의 인내심이 필요하고, 또한 지혜로운 거리가 필요하다. 한 영혼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돌보는 사람들의 인격은 성숙한 현실 감각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소수의 비인격적인 이단 교회들은 이런 불안정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공동체를 더욱 이상한 성격의 모임으로 만들어 간다. 이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강박적 성격이다. 소위 믿음이 강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찾아 드러내기 위해 애를 쓰고, 연약한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의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긴장한다. 평신도들끼리 서로 경쟁하며, 설교자의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도대체 뭘 받은거야?” 라고 비판한다. 심지어 부부싸움은 사단이 남편의 마음 속에 들어간 것이므로 사단에게 속지 않기 위해 남편 속에 있는 사단을 대적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들은 천사를 동원할 수 있다고 믿고, 전도하러 가기 전에 사단을 결박하는 기도를 한다. 이들은 공동체의 인격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자신들이 정의한 좁은 복음의 개념에만 매달리는 강박성을 통해 그 공동체의 비인격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에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님의 인격성 안에서 품고, 그를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으로 바꾸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멀쩡한 사람으로 하여금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면 바른 신자가 될 수 없다고 조건을 붙이는 이단들도 있다. 그리고 깨닫지 않으면 자랄 수 없고, 대학살론을 반복하면서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의 구원에 대해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강박적이다. 그것은 믿는 성도들에게 안심을 주고자 했던 칼빈의 섭리론과는 신학적으로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것이다.

 

부모가 인격적이야 하는 것처럼, 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은 인격적이어야 한다. 바른 신앙은 오직 부모의 건강한 인격성을 통해서만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인격성은 곧 인격적 관계와 영적 관계의 건강함을 말한다. 우리의 다음 세대 자녀들에게 예수믿는 믿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교회 지도자들의 인격적인 돌봄이 필수적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공감적 사랑이 인격성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부모와 달리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거나 종교의 자유를 달라고 하는 것에는 부모 세대의 강박적 성격이 한몫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쉼을 주지 않고, 오직 자신이 설정한 목표만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기 때문이다.

인격성의 특징은 안식과 쉼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치이기도 하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세상의 험한 나그네 여정을 마쳤을 때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궁극적으로 얻게 되는 영광도 삼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안식과 영생의 교제이다.

교회나 사회에 어느 정도의 강박성은 필요하다. 한 영혼을 구원하고, 맡은 일을 철두철미하게 하고, 목표의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이나 자원을 절약하고 일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성실함이 포함된 강박적 성격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지 않고 돌아가는 한국 사회의 강박성 속에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는 공감과 대화를 통한 쉼과 안식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격성의 회복이다. 부모와 아이들이 인격적인 존중 가운데 서로 친해져야 한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인격적인 존중 가운데 교회가 행복한 회복과 위로와 치유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2013년 현재, 한국의 고등학생 44%는 자신이 1년간 감옥살이를 한다고 해도 10억의 돈을 벌수만 있다면 그것은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기꾼이 되고, 전과자가 되고, 남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해도 자신이 돈을 벌수만 있다면 그 정도의 희생은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위험한 물질 만능의 비인격성이 아닐 수 없다. 강박적 성격을 가진 이들에게 가장 예민한 관리의 대상 두 가지는 바로 돈과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고, 돈이나 시간이나 자기 손의 자원을 잃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더욱 탐욕스럽게 되고, 그 손해를 관리하는 데 철두철미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인격적이다.

만일 가정마다 가정 예배의 회복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온 가족이 매일 인격적인 존중과 사랑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함께 기도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만일 그것이 너무 큰 부담이어서 매일 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한 가족이라면 그저 아무런 목적없이 함께 있어주고 서로를 쓰다듬어 주고, 서로의 몸에서 이를 잡아주는 원숭이들처럼 함께 부비며 살펴주고, 서로의 털을 쓸어 주는 무조건적인 수용과 사랑의 인격적인 가족 관계의 회복이 정말 시급하게 필요하다.

 

이 시대가 망가뜨리고, 잘못된 부모가 깨뜨린 사랑의 공동체를 이제는 교회가 회복시킬 차례가 되었다. 교회의 특별한 개입, 특별한 질적 돌봄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너진 가정, 무너진 애착을 회복시켜야 한다. 교회는 성도들과 그들의 가정이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고, 인격적인 휴식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가정과 교회에서 안식과 휴식을 통해 인격성을 회복시켜주지 않으면 우리에게 다음 세대는 없다.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에 대한 성경의 처방전은 안식과 놓임이다. 인간이 안식을 누리고, 사로잡힌 생각에서 놓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하나님이 되신다. 인간이 안식할 때 인간은 피조물의 자리를 찾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일을 이루어 가신다. 목표의 달성만을 생각하고, 일과 성취에 매달려 자신과 이웃을 몰아 부치기만 하는 사람은 어쩌면 하나님도 모르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재성, 강박적인 그리스도인 중에서)

 

 선지동산 64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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